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얘기만 하게 되었지? 왜 더 이상 좋은 것들—몇 년 뒤에 하고 싶은 일, 며칠이 지나도록 마음에 남아 있는 근사한 풍경, 오래 품어온 꿈이나 희망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을까. 이십 대의 우리는 삶이 더 나아질 거라 믿었는데, 삼십 대의 우리는 다만 삶이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스무 살의 우리는 다가올 시간을 기꺼이 기다릴 수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으므로, ‘언젠가’ 무엇이든 될 것 같았다. 내가 번 돈으로 집을 꾸밀 수 있게 되고, 가끔 기분 내며 좋은 것을 사 먹고, 휴가란 걸 써서 휴양지 해변에 누워도 보고…. 그땐 지금 보다 현명해진 내가 지금보다 멋진 삶을 살겠지.
그렇게만 생각했던 시절, 우리는 끊임없이 얘기했다. 언젠가 내 방에 놓을 책상의 생김새와 색깔에 대해, 먹어보고 싶은 음식들에 대해, 가보고 싶은 도시와 해변들에 대해. 오늘 본 영화의 잊지 못할 마지막 장면과 새로 산 책에 밑줄 그은 구절에 대해. 그렇게 떠들고도 아직 할 얘기가 남아 문 닫은 가게 앞에 서서 아쉬운 듯 이야기하던 날들…. 자정이 지나기 전에 오늘 나누고픈 ‘좋은 것’들을 말해야 하는 사람들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랬던 우리는 이제 겨우 시간을 내어 만나서는, 서로를 못 보는 동안 쌓인 안 좋은 얘기들만 털어놓는다. 그러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된다. 진짜 살고 싶은 삶은 따로 있는 사람들처럼 지금의 삶을 함부로 말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풍경이 다 납작해 보인다.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했을까. 뭐가 좋은 얘기라고. 내가 보낸 날들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해버리고 나면, 정말이지 좋았던 일들은 하나도 없었던 것만 같다.
원하던 것을 얻어도, 좋은 곳에 가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그 행복감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때문에 우리는 대체로 행복이 막 지나간 자리에서, 아, 방금 그것이 행복이었지, 깨닫고 마는 것이다. 그런 순간을 제외하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간들은 그냥 살아가는 시간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삶은 좀 더 단순해진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상태’의 나를 탓할 필요도, 초조해할 필요도 없어지는 것이다.
좋은 순간의 좋은 기분은 늘 쉽게 지나가버리므로 기억해두기로 한다. 일상의 잔잔한 강물 위로 찰방, 하고 삶이 빛나는 등을 보인 순간을. 적어도 내가 기뻐지는 순간들을 알고 있으면 나 자신을 더 자주 그런 장소, 그런 순간들로 데려갈 수 있겠지 싶었다.
행복이 언제부터 숙제가 되었는지
사소하고 기쁜 순간,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로 삶을 채워야지, 그 정도가 내가 한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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