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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신라젠에 관해 갑자기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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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이 회사를 사랑했던 것 같다.

수익을 봤기 때문에 아직 추억할 수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처음으로 ir을 몇시간이나 봤고, 바이오 분야는 재무제표가 부실해도 어쩔 수 없는 섹터라고 합리화를 하기도 하고, 파이프라인이 하나 뿐인 게 걸리기도 했지만 펙사백은 정말 될 것 같았고, ROE가 마이너스여도 미래가치는 다를 거라 여기고 장기투자로, 말그대로 '투자'를 했었다. 주변에 암으로 죽은 사람이 너무도 많았고 고통 받은 이들은 그보다 더 많았으니까, 그걸 정복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투자는 내가 태어나서 인류에 이바지하는 한가지 길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암을 정복할 수 있다면. 그래, 나도 꿈에 부풀었다. 주식을 하면서 꿈을 꾸는 것은 죄일까? 당시에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사면 더 확실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에피스 회사니까 좀 더 직접적으로 연구하는 곳이 나도 더 직접적으로 닿는 것 같았다. 바이오 섹터에 투자하는 게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이런 투자는 개인에게 죄가 된다. 원래 주식은 자금을 모아 회사를 굴리고 다시 그 수익을 나눠가져 회사도 커지고 투자자도 이익을 나눠 가져 경제를 키워나가는 순기능을 하는 장치다. 그런데 이론과 현실은 너무 다르다.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문제, 분배의 불균등. 

3상 임상 실패 소식이 나오자마자 믿을 수가 없었다. 회사가 텅 비어있다는 것과 내부자들의 매도 이유를 알게되니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그 해 가장 높은 연봉을 받은 순위에 중소기업 과장급이 대기업 경영진 임원들 사이에 끼어있던 것이, 이상하게 보였던 차트가 그제야 해석되었다. 대주주의 매도는 엄청난 악재지만 그럼에도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매도도 되지않는 '하한가'는 그때 처음으로 겪었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돈에 눈이 멀었다 한들, 사람 목숨을 가지고 돈놀음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돈보다도 화가 났던 건 임상 실험에 참여했던 환자들의 고생이었다. 아픈데다 사기까지 겪어야 하는 게 대체 무슨 경우일까. 그래서 내가 틀렸을지라도 사기가 아니었다고 지금도 믿고 싶다. 순수한 실패였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찾아보지도 않았다. 

아이러니하게 돈이 없는 회사를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사실 가장 자금이 필요한 것은 그런 회사들일텐데 인간의 도덕성은 추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엔 지독한 사람들이 정말 많고, 작정하고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을 내가 걸러낼 방법이 없다. 이제 난 한국에서 장기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 회사로 처음 겪었던 일이 참 많았다. 그리고 씁쓸하게도 내가 알게 된 것은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주식에서 믿을 건 차트 뿐이라는 것. 최근 회전율이 너무 늘어나 나 왜 이렇게 하고 있지? 생각해보다 이 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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